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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원조 한류, 리처드 용재 오닐과 만나는 10월!

  • 작성일2011-09-01
  • 작성자관리자
  • 조회수2123

원조 클래식 한류</br>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스타 비올리스트</br>
리처드 용재 오닐</br>
그의 드라마 그리고 그의 비올라...</br>
클래식 팬덤현상을 몰고 온 남성 앙상블 “디토”의 리더이자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br>
그는 뛰어난 연주실력만큼 이나 멋진 외모 그리고 패션감각을 소유한 스타 비올리스트이다.</br>
뿐만 아니다. 그의 ‘인생여정’ 도 연주만큼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이다. 결국 리처드 용재오닐의 맛깔스런 연주는 그의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는 것이다.</br>
바이올린보다 낮은 음. 스스로 튀지 않고 진중하게 가슴을 울리는 비올라를 닮은 연주자</br>
리처드 용재 오닐,</br>
안산문화예술의전당은 그의 연주를 듣기 전에 용재오닐의 아름다운 삶을 먼저 만나 보았다!</br>
his story</br>
그의 어머니 콜린 오닐(한국명 이복순)은 전쟁고아로 네 살 때 미국으로 입양됐다. 어머니는 어릴 때 열병을 앓아 정신지체가 되었고, 미혼모로 그를 낳았다. 리처드 용재 오닐은 미국인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손에 자랐다. 어릴 때 외할머니가 사준 바이올린 덕분에 음악의 세계에 눈을 뜬 리처드 용재 오닐은 비올라 전공으로 줄리어드 음악원에 입학한다. 이 곳에서 그는 세종 솔로이스츠를 만든 강효 교수를 만나 한국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자각하고, ‘용재’라는 한국 이름을 새로 얻게된다.</br>
무엇보다도 한국에 ‘리처드 용재 오닐’이라는 이름이 알려지게 된 건 <인간극장> 이라는 한 매체를 통해서 이다. 여기서 용재는 자신의 불우한 환경을 딛고 쥴리아드 장학생으로 그리고 한국인 장애 어머니를 돌보는 아들로서 살아가는 모습이 시청자 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br>
리처드 용재 오닐.</br>
어쩌면 가슴을 울리는 용재의 연주는 한편의 드라마와 같은 그의 삶에서부터 나온 것은 아닐까...?</br>
전 또래 친구들보다 빠른 나이인 열다섯 살에 집을 나와 독립했어요. 아무도 날 케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걸 혼자 해나가야 했죠. 가이드가 없는 인생을 좀 더 빨리 시작했다고 할까요... 다른 아이들이 부모의 가르침을 통해 세상을 배워갈 때 전 실수를 통해 모든 걸 깨우쳤죠. 정신적으로 장애를 지닌 어머니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어른스러워진 것 같기도 해요. 저 자신에게 엄격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죠.</br>
-리처드 용재 오닐 인터뷰 중에서-</br>
his Viola</br>
(인터뷰 글은 다르게 .... 표시)</br>
사람들은 제 음악을 들으면 눈물이 난다고 해요. 멜랑콜리한 비올라의 음색이 마음에 가 닿는 거지요. 하지만 저는 사람들이 제 음악을 듣고 행복했으면 해요</br>
리처드용재오닐은 비올라가 바이올린이나 첼로에 비해 별로 주목받지 않던 악기였지만 그 잧선 느끼밍 좋았다고 한다. 바이올린처럼 가늘지도, 첼로처럼 굵지도 않은 음색, 안정적인 듯하면서도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소리가 좋았다고 한다. 마치 엄마의 목소리처럼 편안한...</br>
그는 쥴리어드 입학당시 100년 역사상 처음으로 전액 장학금을 받아 화제를 모았다.</br>
사람들은 비올라를 특성이 없는 악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바이올린처럼 높지도, 첼로처럼 낮지도 않은 음역 때문일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화려한 파타의 잘 차려입은 사람들 사이에 어두운 느낌의 붉은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br>
잘 눈에 띄지는 않지만</br>
알아보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것에도지지 않을 아름다움을 선사한다는 의미일 것이다.</br>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진중한 음색을 내는 비올라는 마치 인생의 슬픔과 기쁨을 모두 알고 있는 리처드 용재 오닐, 그 자신을 닮은 악기가 아닐까...?</br>
커리어를 쌓느라 연애할 생각도 들지 않는다는 이 청년의 전 재산은 앤티크 비올라 한 대 뿐이다. 이탈리아의 조반니 토노니가 제작한 1699년산 비올라는 그가 5년 전쯤 학생 때, 대출을 받아 큰 맘 먹고 구입한 것이다.</br>
당시로선 가장 큰 투자를 한 것이고, 아직도 대출금을 갚고 있지만 전혀 후회하지 않아요. 아마도 지금 이걸 판다면 벤틀리 포르쉐 등 최고급 자동차를 몇 대나 살 수 있을 걸요?(웃음)</br>
-wealth&fame 인터뷰 중-</br>
his life</br>
만약 아주 좋은 순간들만 많았고,</br>
슬펐던 때가 없었다면</br>
행복하다는 것도 몰랐을 것입니다.</br>
행복이 어떤 것인지</br>
이해하기 힘들었겠죠.</br>
그런 의미에서 시련은 축복입니다.</br>
슬픔이 많았는지 기쁨이 많았는지,</br>
비교할 수는 없어요.</br>
양쪽 다 있었고, 밸런스가 맞았기 때문에</br>
나의 지금이 있는 것입니다.</br>
Paper 2월호, 180cm의 키에 조막만한 얼굴, 디올(Dior)의 남자모델을 연상케 하는 슬림한 몸매를 가진 리처드 용재 오닐.</br>
그는 각종 의류회사의 모델이 될 정도로 뛰어난 패션감각을 소유하였다.</br>
한 인터뷰에서 용재오닐은 이렇게 말한다</br>
옷을 입을 때, 날 알아달라고 떠버릴 필요는 없죠. 음악도 제가 사랑하는 만큼 확신을 가지고 표현하면 된다고 봐요.</br>
브랜드 로고가 보이는 것, 최신 신상품은 일부러 피한다는 그는, 연주 시즌에는 연습할때에도 언제나 무채색의 깔끔한 정장을 입는다. 보수적이면서 쉬크한 용재오닐의 스타일은 진중한 비올라의 선율과 너무나 닮아 있다.</br>
리처드 용재 오닐의 (기도)가 드리는 특별한 이벤트 !</br>
8월 18일 ~9월 16일까지 “클래식 매니아” 티켓을 예매하시는 분들 중 2분을 추첨하여</br>
리처드 용재 오닐의 6집 앨범 (기도)를 선물해 드립니다!</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