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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 콘텐츠

156. 신언인도(愼言人圖 114.8×57.6)

  • 작성일2013-09-04
  • 작성자단원미술관
  • 조회수403

먼저 화면 상단에 강세황(姜世晃)이 예서(隸書)로 적은 화제를 보면 다음과 같다. 이는 옛적에 말을 삼가한 인물이다. 경계할지어다! 말을 많이 하지 말라. 말이 많으면 실패가 많다. 일을 많이 벌리지 말라. 일이 많으면 우환이 많다. 안락하면 반드시 경계하라. 후회할 일을 하지 말라. 무슨 다칠 일이 있으랴고 말하지 말라. 그 화가 장차 오래 갈 것이다. 무슨 해가 있으랴고 말하지 말라. 그 화가 장차 크리라. 듣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신령이 장차 사람을 엿보느니라. 도도히 흐르는 물처럼 멸하지 않고 큰불처럼 분명하니 어쩌겠는가? 졸졸 흘러서 막힘이 없나니 끝내는 큰 강물을 이루느니라. 혹은 면면히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서(그대를 얽매는) 그물이 되리라. 터럭끝만큼도 어그러짐이 없어야만 장차 도끼자루(권한)를 잡게 되는 것이다. 진실로 능히 신중히 할 수 있어야만 복의 근원이 된다. 무슨 다칠 일이 있으랴고 말하지 말라. 재앙의 문이다. 강함으로 밀어부치는 자는 (온전한) 죽음을 얻지 못한다. 이기기를 좋아하는 자는 반드시 그 적수를 만난다. 도적은 주인을 미워하며, 백성은 그 윗사람을 원망하는 법이다. 군자는 천하가 (자신의) 위로 올라설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아래쪽에 처한다. 뭇 사람이 (자신보다)앞설 수 없음을 알기 때문에 그 뒤쪽에 자리한다. 따뜻하고 공손하며 신중한 덕성으로 사람들이 경모하게 하며 암컷의 부드러운 (성품을) 지니고 아래에 있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넘어서지 못한다. 사람들이 모두 저쪽으로 달려갈 때 나는 홀로 이쪽을 지킨다. 사람들이 모두 혹하여 있을 때 나는 홀로 상관하지 않는다. 안에 품은 덕을 내가 알지만 사람에게 기예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가 비록 존귀하고 높아도 사람들이 나를 해하지 못한다. 대저 큰 강이 비록 아래에 있기는 하지만 모든 개울보다 긴 것은 그것이 낮은 때문이다. 하늘의 도는 알지 못하나 항상 착한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다. 경계할 지어다! 1773년 8월 표암 강세황이 써서 좌청헌(좌청헌)에게 드린다. 157,158. 서원아집도(西園雅集圖) 중국 송의 왕진경(王晋卿)이 서원(西園)에서 선비ㆍ도사ㆍ스님 등과 더불어 아회(雅會)를 갖은 서원아집(西園雅集)은 고사인물의 한 주제로 즐겨 그려졌다. 조선시대 이 주제의 그림은 18세기 이후것들이 유존되고 있는데 김홍도의 경우 알려진 것만도 <서면서원아집도>를 비롯해, 8폭병으로 된 것 등 3점에 이른다. 선면 서원아집도에는 강세황이 등장인물 모두를 열거하고 있다. 시종드는 인물 10명을 포함하여 모두 26명이 등장되는 이 <서원아집도>는 강세황이 화평에서 중국의 이공린이 이 주제의 그림으로선 첫째이나 김홍도가 그와 우열을 다루기 힘들며 오히려 더 훌륭하며, 입신(入神)의 경지에 들었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비록 중국의 이 분야 그림은 도판에 의한 이해이나 알려진 몇 그림과 비교할 때 주제의 공통성에도 불구하고 화면의 구성 및 구도 그리고 묘사에 있어서도 김홍도 나름의 독자성이 두드러진다. 특히 도석인물이나 고사인물화에 있어서는 중국에 연원을 둔 내용이기에 중국의 한 아류로 보기 쉬우나 이 분야에서도 화풍에 있어 적지 아니한 차이를 감지하게 된다. 6폭을 하나의 화면으로 하여 대각선 구도로 안배하여, 담장 만은 비스듬이 드러다보는 시점으로 전개시키고 있다. 버드나무ㆍ오동ㆍ 파초ㆍ소나ㆍ타작나무ㆍ대나무 등을 비슷한 비중으로 배경에 등장시켰고, 인물은 다소 우측에 치우친 몇 단으로 나누고, 각기 다른 동작과 자세, 표정마저 읽을 수 있도록 나타냈다. 한 쌍의 학과 사슴도 각기 인물군과 문쪽으로 향하게 하여 시선을 양분케 하는 듯 조화를 꾀하고 있다. 바위와 수목처리의 자신감이 있는 강한 필선과 인물 표현의 고른 선 등 여러 측면에서 기량과 격조를 읽을 수 있다. 김홍도의 고사인물화 중에 대표작에 드는 수작이다. 화평은 다음과 같다. 내가 이전에 본 아집도(雅集圖)가 수십점에 이르는데 그 중에 구영(仇英1509~1559字 十洲)이 그린 것이 첫째이고 그외 변변치 않은 것들은 지적할 가치가 없다. 지금 김홍도의 이 그림을 보니 필세가 빼어나게 아름답고 포치가 적당하며 인물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미불(米 1051~1107 字 元章)이 벽에 글씨를 쓰고, 이공린(李公麟 1054~1105 字 伯時)이 그림을 그리고 소식(蘇軾 1036~1101) 자 자)이 글씨 쓰는 것 등에 있어 그 참된 정신을 살려 그 인물과 더불어 서로 들어 맞으니 이는 선천적으로 깨친 것이거나 하늘이 가르쳐 준 것이다. 구영의 섬약한 필치에 비교하면 이 그림이 훨씬 좋다. 이공린의 원본과 우열을 다툴 정도이다. 우리 나라 지금 이러한 신필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치 못했다. 그림은 원본에 떨어지지 않으나 내 글씨가 서툴러 미불에 비교할 수 없으니 훌륭한 그림을 더럽힐까 부끄럽다. 보는 사람의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1778년 설날 표암이 제하다. 156. 신언인도(愼言人圖 114.8×57.6) 먼저 화면 상단에 강세황(姜世晃)이 예서(隸書)로 적은 화제를 보면 다음과 같다. 이는 옛적에 말을 삼가한 인물이다. 경계할지어다! 말을 많이 하지 말라. 말이 많으면 실패가 많다. 일을 많이 벌리지 말라. 일이 많으면 우환이 많다. 안락하면 반드시 경계하라. 후회할 일을 하지 말라. 무슨 다칠 일이 있으랴고 말하지 말라. 그 화가 장차 오래 갈 것이다. 무슨 해가 있으랴고 말하지 말라. 그 화가 장차 크리라. 듣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신령이 장차 사람을 엿보느니라. 도도히 흐르는 물처럼 멸하지 않고 큰불처럼 분명하니 어쩌겠는가? 졸졸 흘러서 막힘이 없나니 끝내는 큰 강물을 이루느니라. 혹은 면면히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서(그대를 얽매는) 그물이 되리라. 터럭끝만큼도 어그러짐이 없어야만 장차 도끼자루(권한)를 잡게 되는 것이다. 진실로 능히 신중히 할 수 있어야만 복의 근원이 된다. 무슨 다칠 일이 있으랴고 말하지 말라. 재앙의 문이다. 강함으로 밀어부치는 자는 (온전한) 죽음을 얻지 못한다. 이기기를 좋아하는 자는 반드시 그 적수를 만난다. 도적은 주인을 미워하며, 백성은 그 윗사람을 원망하는 법이다. 군자는 천하가 (자신의) 위로 올라설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아래쪽에 처한다. 뭇 사람이 (자신보다)앞설 수 없음을 알기 때문에 그 뒤쪽에 자리한다. 따뜻하고 공손하며 신중한 덕성으로 사람들이 경모하게 하며 암컷의 부드러운 (성품을) 지니고 아래에 있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넘어서지 못한다. 사람들이 모두 저쪽으로 달려갈 때 나는 홀로 이쪽을 지킨다. 사람들이 모두 혹하여 있을 때 나는 홀로 상관하지 않는다. 안에 품은 덕을 내가 알지만 사람에게 기예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가 비록 존귀하고 높아도 사람들이 나를 해하지 못한다. 대저 큰 강이 비록 아래에 있기는 하지만 모든 개울보다 긴 것은 그것이 낮은 때문이다. 하늘의 도는 알지 못하나 항상 착한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다. 경계할 지어다! 1773년 8월 표암 강세황이 써서 좌청헌(좌청헌)에게 드린다. 159,164. 주부자시의도(朱夫子詩意圖) 김홍도가 1800년 정초에 정조(正朝)에게 진상한 8폭 병풍 가운데 여섯 폭으로 제1폭 <사빈신춘도(泗濱新春圖)>와 제5폭 <백운황엽도(白雲黃葉圖)>는 전하지않는다. 정조의 어제문집(御製文集)인 홍재전서(弘濟全書)에 관련 기록이 여기서 정조는 이 작품에서 김홍도가 '주자(朱子)가 남긴 뜻을 깊이 얻었다'고 칭찬하고 화폭에 보이는 주자시마다 화운시(和韻詩)를 붙였다. 각폭에는 김홍도 자필로 주자(朱子)의 칠언절구(七言絶句)시 한 수씩과 성리학자 웅화(熊禾)의 주(註)가 적혀 있다. 묵서(墨書) 관지는 일체 없으나 도서(圖書) 3과(顆) 의 내용으로 작가가 확인된다. 즉 화제 우상(右上)의 두인(頭印)이 백문타원인(白文?圓印) '(좋은 산수에 마음이 취하네)'로서 김홍도의 도서이며, 작가인 주문방인(朱文方印)''와 백문방인(白文方印)''이다. 이 중 ''라는 도서(圖書)는 위 작품이 어람용()이었음을 말해 준다. 작품의 주제는 대학(大學) 경일장(經一章)의 '팔조목(八條目)'인 '' '' '' '' '' '' '' '' ''이다. 팔조목이란 유교의 학문과 수양(修養)과 정치의 본령을 단계적으로 제시한 것이므로 곧 조선왕조의 치국 이념인 성리학 사상의 대강(大綱)을 다룬 것이라 하겠다. 소재는 주자(朱子)의 칠언절구 한시 내용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러나 시 내용은 웅화(熊禾)의 주(註)에 의하여 대학(大學) '팔조목()'과 각각 연관되어진다. 대학은 영조(英祖)와 정조(正朝) 두국왕, 그 중에서도 정조에 의해서 장기간 열성적으로 탐구되고 그 가르침의 실천도 병행되었는데, 그것은 정조가 성군절대주의에 근거한 탕평정치를 이루는 과정에서 그 사상적 기반을 대학에서 찾았기 때문이었다. 정조는 작품을 진상받기 두어 달 전에 오랜 세월에 걸친 대학 탐구를 결산하는 어정대학류의(御定大學類義)사본을 완성하였다. 그러므로 <주부자시의도>는 아마도 이 책의 완성을 기념하는 제작을 명하였다고 생각된다. 한 편 1800년 1월 1일에는 세자 책봉을 명하는 경사가 있었다. 이처럼 이 작품의 조선 왕조사상 차지하는 정치사적 의의는 중대한 것이다. 세부기법은 어람용 그림답게 꼼꼼하고 치밀하며 필치는 공손하고 단정하다. 또 모든 세부에는 김홍도 만년작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질로서 흔들리는 붓질과 평면화 경향이 일부 드러나 있다. 한편 세부처리 일부에서는 이인문(李寅文)의 작품과 양식상의 공통점을 보이는 점이 주목된다. <주부자시의도>는 주자(朱子)의 시를 주제로 한 작품인 까닭에 중국의 인물ㆍ경치ㆍ배ㆍ건축ㆍ복식 등을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작품의 인상은 이국적이기는 커녕 매우 조선적이다. 원작이 전하지 않으나 이해의 편의상 1폭과 5폭의 해설도 덧붙였다. 사빈신춘도 泗濱新春圖(망실작 제1폭) 봄날, 원시 좋은 날 꽃 찾아서 사수(泗水) 강가 나서 보니 가 없는 세상 경물 일시에 새롭구나 이따금 얼굴에 닿는 봄바람을 느끼나니 천만 가지 붉고 푸른 이 모두가 봄이구나 웅화가 말하기를 "만물 이치의 겉과속, 정세함과 거칠음이 모두 드러나지 않음이 없다"고 하였다. 원시와 화운시의 내용을 아울러 미루어보면, <사빈신춘도(泗濱新春圖)>는 봄날 화사한 꽃나무에 산들바람이 불고 새들이 즐겁게 지저귀는 강둑을 거니는 주자(朱子)가 봄의 생명력에 새삼 감탄하는 정경과 동자가 거문고를 들고 뒤따르는 모습을 그린 산수인물화였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시구(詩句) 중의 사수(泗水)는 일찍이 공자(孔子)가 머물러 제자를 가르치던 노(魯) 나라 지방에 있었으므로 남송(南宋)사람인 주자가 실제로 가볼 수는 없었던 곳이다. 따라서 사수(泗水)는 공문(孔門)을 가리키는 것이 되고 꽃을 찾는다는 것은 곧 성인지도(聖人之道)를 구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므로 이 작품이 의미하는 바는 봄 날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 생명력에 대한 경외감과 그 안에 담겨진 우주의 이치를 추구하는 성리학적 열정을 상징한 것이라고 하겠다. 159. 가가유름도 (家家有凜圖 제8폭) 「석름봉, 원시(石凜峯)」 일흔 두 봉우리 모두 하늘을 찌를 듯한데 한 봉우리에 돌노적가리라는 옛 이름이 전하누나 집집마다 노적가리 있어 높기가 그만하니 참 좋은 사람 세상 쾌할한 세월일레 웅화가 말하기를 “백성이 부유하면 예의가 자리잡히니 천하가 태평하리라”했다. 작품은 주제의 쾌활함에 걸맞는 활달한 구도로 되어 있다. 즉 아래로부터 비스듬히 갈지(之) 자로 전개되면서 1.타작장면, 2. 집 뒤의 대숲에서 산기슭 윤곽선까지, 3. 아지랑이 낀 부분, 4. 석름봉을 비롯한 72봉우리 등이 삼각형으로 맞물려 있는 것이다. 72봉우리 등이 삼각형으로 맞물려 있는 것이다. 72봉은 뾰족한 암봉이 병기(兵器)를 늘어세운 듯 날카롭게 솟았고 그 앞에 노적가리 모양의 석름봉이 우뚝섰다. 그 아래는 아지랑이 여백으로 균형을 잡았는데 아랫 변에 산기슭 윤곽선을 진하게 긋고 수목을 열지워 세워 마감했다. 이 산기슭을 아지랑이로 처리한 수법은 <기로세연계도(耆老世聯?圖)>에 보이는 것과 같다. 그 아래 절벽 앞의 나무는 가지 굵기가 멋대로 넓었다 좁았다 하는 김홍도 만년의 특징적인 묘법을 보이는 평면적인 형태로서 맨 윗 가지가 직각으로 꺾인 사의적(寫意的)인 묘법은 <추성부도(秋聲賦圖)>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그런가 하면 마을의 나무는 선묘 자체는 구불구불하지만 가지가 무척 번다하게 묘사된 점에서 김홍도 초기 수지법(樹枝法)의 여운이 보인다. 아래는 한창 가을걷이로 바쁜 마을 풍경이다. 초가집과 담장으로 구획지어진 이곳에서는 마당에 멍석을 깔고 키를 높이 쳐들고 곡식을 까부르는 이, 허리 아래로 키질하는 이, 흩어진 낱알을 쓸어 모이는 이가 있고, 아기 젖먹이는 아낙, 어린애와 광주리 옆에서 일하는 아낙과 서 있는 아낙이 있다. 뒷집에서도 한 아낙이 아기를 안고 밖을 내다본다. 다시 右下 구석에는 창턱으로 얼굴을 내민 인물과 이야기하며 디딜방아를 찧는 사내와 아이의 도움을 받으며 절구 찧는 인물이 있다. 이처럼 많은 인물을 여기저기 요령있게 배치하여 추수의 흥겨운 분위기를 그려냈다. 특히 석름봉의 형태와 꼭 닮은 노적가리가 곳곳에 벌려 있어 타작의 기쁨과 어울리는 운율감을 준다. 태평 천하를 이룩하려면 백성의 곳간을 채워야 함을 강조 한 것이다. 160. 총탕맥반도(蔥湯麥飯圖 7폭) 「채씨 부녀의 집, 원시(蔡氏婦家)」 팟국에 보리밥이 서로 잘 어울리니 파는 단전(丹田)을 길러주고 보리는 허기에 요기 되네 이 가운데 무슨 재미냐고 말하지 마소 앞마을엔 오히려 밥 못 짓는 때도 있다고 하네 웅화가 말하기를 “文王은 백성의 고통을 자기 아픔처럼 여겨 추위에 얼고 굶주리는 일이 없게 하였다”고 했다. 작품 하반부는 띠울타리를 두른 ㄱ자형 초가집 정경이다. 들쳐진 창을 통해 간촐한 밥상을 앞에 한 朱子와 시중 드는 부인이 앉은 모습이 보인다. 마당에는 쟁반을 받든 시녀가 막 들어서려는 참이다. 집 뒤편에는 베틀과 돈(墩:의자) 두 개가 보인다. 마당에는 큰 오동나무가 서 있고 그 앞에 커다란 괴석과 관음죽이 있다. 집 옆에도 괴석과 대숲이 촘촘하다. 이것들은 집주인이 살림은 여유가 없어도 품격이 도도함을 상징하는 듯하다. 열린 사립문 밖에는 수레와 앉아 쉬는 동자가 보인다. 화면 상반부는 개울을 따라 갈지(之)자로 멀어지면서 주산(主山)에 이르는데 원근감이 뚜렷하여 깊은 공간감을 확보했다. 개울 위에 다리가 있고 버드나무 뒤로 초가집과 논이 보이며 주산 아래 먼 마을이 자리하였다. 이것은 화제의 ‘앞마을엔 오히려 밥 못짓는 일도 있다 하네’에 대응하는 것으로서, 어려운 백성의 처지를 늘 잊지 않는다는 주제를 위한 배려이다. 구도는 우상(右上)에서 좌하(左下)로의 대각선 방향이지만 수평선도 병용하여 평담한 느낌을 준다. 주산 좌측 기슭의 연운 처리가 요령있다. 161. 생조거상도 (生朝擧觴圖 제6폭) 「어머니 생신 아침에 장수를 빌다, 원시」 공손하게 생신 아침에 한 잔 술 올리오니 짧은 노래 가락 그쳤어도 뜻은 따로 기옵니다 원하시는 말씀 돌아가신 아버님과 아들 손주의 편안함 뿐 검은 머리 홍안으로 즐거움 길이 누리소서 웅화가 말하기를 “집을 다스리는 근본은 부모님께 공순함에 있다”고 하였다. 늦더위가 남은 초가을 어느날 큰 기와 집에서 벌어지는 모친 생신 잔치 장면이다. 돌담에 기대어 지은 집에서 차양을 치고 자리를 깔아 잔치를 벌이는데, 앞에는 힘찬 선묘로 둥지를 묘사한 늙은 활엽수가 서 있고 뒤는 대숲이다. 좌정한 모친은 음식이 수북한 독상을 받았으며 수염 난 아들이 꿇어앉아 술잔을 올린다. 아쉽게도 모친의 얼굴은 먹칠과 긁은 자국으로 손상을 입어 표정을 살필 수 없다. 자리에는 동생인 듯한 인물이 독상 앞에 앉았고 형 차지의 독상도 보인다. 뒤에 주자(朱子)의 젊은 아들과 아이 둘이 겸상을 했으며 앞쪽엔 두 부인이 앉았다. 부엌에서 쟁반을 든 여인이 나오는데 마당에는 암수탉과 병아리 가족이 평화롭다. 그 옆 농기구를 두는 창고에는 괭이와 삽이 보인다. 화면 아래 별도의 담으로 분리된 초가집에는 손님으로 보이는 세 사람이 겸상을 하고 앉았는데 쌍상투를 튼 동자가 술과 잔을 나르는 중이다. 초가 옆에 괴석과 파초, 그리고 작은 받침에 놓인 난초 괴석상이 깔끔하다. 화면 상부는 안개 속으로 잦아들며 굽이굽이 흘러가는 개울과 버드나무로써 이른 아침의 아슴프레한 대기를 시사하고 공간감을 확보하였다. <생조거상도>는 모친의 생신날 축수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집안 식구들의 화목함을 묘사하고 있으며 깔끔한 건축물 묘사는 ‘바로 잡힌 집안’을 상징하는 듯하다. 제7폭ㆍ제8폭과 함께 풍속화적 요소가 두드러진다. 162. 월만수도만도 (月滿水滿圖 제4폭) 「무이도가 넷째 굽이, 원시」 넷째 굽이 동서 양 편에 큰 암벽 솟았는데 암벽 꽃엔 이슬 달리고 푸르름이 드리웠네 금빛 닭 울음 그친 후에 보는 이가 없으니 빈 산에 달빛 차고 못엔 물이 가득하네 웅화가 말하기를 “정심(正心)이란 다만 어둡고 어리석지 않아 어지러움이 없음이라” 하였다. 『무이도가(武夷棹歌)』는 1184년에 주자(朱子)가 제5곡(第5曲) 은병봉(隱屛峰) 아래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짓고 살면서 지은 작품으로, 예로부터 시 속에 그림이 있고 붓 끝에 정이 묻어난다고 평가된 명시이다. 따라서 중국은 물론 조선에서도 수많은 작가들이 화운시를 제작했는데, 특히 대학자 주자를 흠모하는 유학자들이 즐겨 지었고 그 사적을 모방하여 자신의 거처를 구곡(九曲)으로 명명한 예도 많았다. 위 시는 그 중의 제4곡이다. 작품을 보면 아래쪽이 깎여들어간 대장봉(大藏峰)이 물가에 위태롭게 섰고 계곡 건너 선조대(仙釣臺)가 있어 동서로 마주하였다. 그 사이로 가는 폭포 물줄기가 아슴프레하다. 암벽에 매달린 꽃나무는 이슬을 머금었으며 위쪽에는 초목이 우거졌다. 원래 대장봉 암벽 아래에 굴이 하나 있어서 옛적에 그 안에서 닭이 울었으므로 금계동(金鷄洞)이라 했다. 그러나 이제 금계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고 보는 이도 없어 다만 공산탱월(空山?月)과 심담한수(深潭寒水)만이 정막함을 도운다. <월만수만도>는 단순한 조형요소로 이루어낸 걸작이다. 우측 대장봉을 진하게 처리하고 맞은편 선조대와 폭포를 매우 아스라하게 처리하여 대비시켰다. 특히 좌측 암벽의 대부분을 거의 여백으로 비워 두고 아래쪽만을 약간의 윤곽선과 연록색 태점으로 묘사한 것은 놀라운 공간감각이다. 대조적으로 대장봉 아래편 바위는 강한 농묵선 윤곽에 농묵의 태점으로 든든하게 처리했다. 물 위로 솟은 바위 역시 유사한 형태로 다듬어 조화를 이룬다. 다만 물에 씻겨 좀더 둥글어진 형태이고 태점을 생략했다. 못의 물결은 사진으로는 잘 안 보일 만큼 흐린 선으로 가로 길게 긋고 담청색을 바림해서 깊고 잔잔한 느낌을 준다. 암벽 위쪽의 멀리 보이는 나무들은 연운에 맞닿았다. 원산은 단정한 윤곽선 위에 청색 선염을 베풀었고 보름달도 바깥을 담청으로 바림하여 맑고 깨끗한 느낌을 준다. 구도를 보면 두 암벽을 사이에 두고 위편의 보름달 뜬 하늘과 아래편 깊은 못물이 서로 조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밝은 달빛 가득한 빈 산, 빈 하늘과 깊은 못에 가득한 물의 고요하고 담담한 정경은 곧 正心의 경지를 상징한다. 163. 만고청산도 (萬古靑山圖 제3폭) 「적계의 호선생에게 부침, 원시」 둥근 들창 앞편으로 푸르름이 병풍 둘러 저녁 되어 마주하니 우주 만물이 고요하네 뜬 구름에 만사를 맡겨 한가롭게 책을 펴니 만고의 청산이야 다만 그저 푸르르네 웅화가 말하기를 “誠意라는 것은(마음에) 主宰함이 있어 (사물의) 動靜간에 통하는 것이라”했다. 작품 하변이 밭아 보여 다소 잘려 나갔다고 생각된다. 둥근 들창을 낸 기와집 앞에 낙랑장송 두 그루가 서로 닮은 모습으로 서 있는데 둥지 끝은 주산(主山) 방향으로 휘어졌다. 그 뒤로 곧은 전나무가 보인다. 지붕의 사선이 좌하 구석을 메운 것처럼 맞은편 산기슭도 대칭을 이루면서 우하를 메웠다. 다만 왼편엔 경물이 가득하고, 오른편엔 텅빈 깔끔한 마당에 학 두 마리가 한가롭게 서 있다. 뒤로 커다란 괴석 둘과 파초, 그리고 대숲이 있다. 들창으로 뒷모습이 보이는 선비는 고개를 들어 주산 봉우리를 바라본다. 집 주위에 ‘푸르름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주자(朱子)는 ‘저녁 무렵 우주 만물이 고요’한 것처럼 자신도 무심하다. <만고청산도>에서 중심 주제는 주산이다. ‘우주 만물’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은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형태는 아래부분을 연운(烟雲)으로 처리하여 마치 대지로부터 고요하게 솟아오른 듯한데, 안정된 삼각형 모양을 중심으로 여러 봉우리가 사선 방향으로 겹겹이 꽉 짜여져 있다. 그 안정된 결구는 고요함과 견고성을 시사한다. 정중앙의 원산은 좌측으로 멀어지면서 거듭 축소되고 흐려져서 깊은 공간감을 조성한다. 원산은 실루엣만 묘사하였지만 윤곽선을 단정하게 덧댔다. 산이 정(靜)이라면 ‘뜬 구름에 만사를 맡겼다는’ 주산 옆의 구름은 동(動)이다. 구름은 전통적인 선묘법에 의한 품격 있는 묘사로 되어 있다. 구도 자체는 우상(右上)에서 좌하(左下)로 이어지는 대각선 방향이 주가 되면서도 그 반대 방향으로 여백을 마련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뜻이 성실함’으로써 우주만물이 그대로 수용되는 경지를 보여준다. 164. 춘수부함도 (春水浮艦圖 제2폭) 「글을 읽고 느껴 짓다, 원시」 어젯 밤 강가에 봄물이 불더니만 싸움배 거함조차 터럭 한 올인양 가볍게 뜨네 그 동안 밀고 옮기려 들인 힘 잘못 애쓴 것이더니 오늘은 흐름 가운데서 자재롭게 가는구나 웅화가 말하기를 “의리가 익은 때에 지(知)는 저절로 다다르게 되니 (그 때는 만사가) 자연히 잘 되어 간다”고 하였다. 근경의 강언덕과 건너편 강둑이 푸르른 버드나무와 함께 일부만 묘사되어 있고 화면 대부분은 강과 바다로 되어 있다. 강폭을 넓게 묘사한 것은 화제에 보이듯이 봄물이 갑자기 불었기 때문이니, 강 건너편 버드나무 아랫둥지가 물에 잠겨 있는 것으로도 확인된다. 좌하(左下) 기슭의 전함 세 척은 돛대만 보이고 건너편 앞쪽에는 네 척이 있는데 그 중 맨 좌측 것은 막 돛을 올리는 중이며 깃발을 보면 바람은 좌에서 우로 불고 있다. 전함쪽으로 다가서는 작은 배에는 차일을 쳤고 책이 놓인 서안(書案)이 있으며 한 선비가 동자와 마주 앉았는데 고개를 돌려 전함들을 바라본다. 이 인물은 주자(朱子)일 것이다. 인물 묘사는 남종화법에 흔히 보이는 방식으로 두 눈을 점으로 콕콕 찍고 수염만을 간략하게 그렸다. 강둑 뒤 쪽에 선체는 가리웠으나 활짝 돛을 펼치고 막 떠나려는 전함 한 척이 있고 맨 위 화제 아래에 돛을 반쯤 펼치고 먼 바다로 떠나가는 전함 한척이 있다. 이 배는 물 한 가운데 배치하여 자유롭게 보이나 화제에 보이는 ‘흐름 가운데서 자재롭게 가는구나’를 묘사한 것으로 참 앎〔眞知〕에 도달한 경지를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