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주 메뉴 바로가기

다양한 안산문화재단 문화예술 소식을 접해보세요

더 다양한 소식을 원하신다면

단원 김홍도 콘텐츠

197. 신선도(神仙圖)

  • 작성일2013-09-04
  • 작성자단원미술관
  • 조회수393

197~204 신선도(神仙圖) 강세황의 화평(畵評)이 매 폭마다 적혀 있는 진채(眞彩)의 신선도(神仙圖) 팔폭(八幅)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제8폭 상부에 ‘기해양월 사능(己亥陽月 士能)’의 관기(款記)가 있어서 1779년 음력 10월 그의 나이 35세때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강세황은 김홍도에 대하여 “특히 신선과 화조를 잘하여 그것만 가지고도 한 세대를 울리며 후대에까지 전하기에 충분하였다”라고 그의 신선도를 높이 평가하였다. 또한 김홍도의 그림을 얻은 사람이 한 두마디의 평어(評語)를 써주기를 요구하였으며 궁중에 들어간 김홍도의 병풍과 권축(卷軸)에도 자신의 글씨가 뒤에 붙은 것이 더러 있다고 적고 있는데 이 신선도는 이러한 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군선의 전체적인 구도를 중요시 한 32세때의 <군선도 8곡병>(도 195)과 달리 매 폭마다 중심되는 신선을 중심으로 독립적인 화면을 이루고 있다. 바탕에 담묵을 깔아서 고아한 분위기를 내고 있는데 담채(淡彩)와 진채(眞彩), 부분부분에 금채(金彩)를 적절하게 구사하여 다양한 색채를 보이고 있다. 특히 옷자락?수엽 등의 호분(胡粉)이 산뜻한 맛을 내고 있는데 얼굴에도 호분을 칠하여 살색에 깊이감이 있다. 굵은 필획의 옷자락이 두드러지게 보이는데 세부는 세필로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각 폭에 강세황의 평이 있어서 도상해독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김홍도, 강세황 및 당대인들의 신선에 대한 생각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순서대로 각폭의 화평(畵評)과 도상(圖像)을 보면 다음과 같다. 197. 선동취적도(仙童吹笛圖) 강세황의 화평을 보면, 당시에 사람들이 이 그림을 옥자진도(玉子晉圖)라 하는데 자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히고 있다. 옥자진은 주(周) 영왕(靈王)의 태자인 왕자(王子) 교(喬)인데 생황을 불어서 봉황소리를 잘 냈다고 한다. 명(明) 왕기(王圻) 찬(瓚)의 《삼재도회(三才圖會)》에 보면 생황을 들고 학(鶴)에 올라 타 있는 젊은 신선의 모습으로 도해되어 있다. 이 신선이 사슴을 배경으로 피리를 불고 있기 때문에 강세황은 학, 생황과 관련 있는 옥자진의 도상이 아니라고 이견을 제기한 듯하다. 피리와 관련있는 선인으로는 한상자(韓湘子).소사(簫史) 등이 있으나 이 신선의 이름을 명확히 알 수는 없다. 푸른 옥을 뚫어 아홉 구멍을 만드니 솜씨 또한 훌륭하다. 피리를 부는 이를 사람들은 자진이라 하나 나는 아니라고 말한다. 저 펄럭이는 것은 날개인가, 나는 긴 뿔이라고 생각한다. 표암평 이용눌은 그림을 사랑하여 골수에 미쳐있다. 내가 용눌을 사랑하는 것이 마치 용눌이 그림을 사랑하는 것과 같아서 이것을 그려 준다. 정묘한 뜻은 저절로 필(筆) 이상에 있으니, 만약 세상에 자운(子雲)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기해 음력 시월 사능 198. 청오자(靑烏子 130.7×57.6) 사슴을 데리고 걷고 있는 노인의 모습이 명대(明代) 홍자성(洪自誠) 찬(撰)의 <선불기종(仙佛奇?)>(1602)에 보이는 청오자의 도상과 흡사하여 강세황의 평대로 청오자(靑烏子)를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청오자는 팽조(彭祖)의 제자이며 471세에 금액(金液)을 먹고 승천한 신선이다. 이러한 농묵의 굵은 의습선을 일컬어 강세황이 ‘몰골사의(沒骨寫意)’ ‘초초일필(草草一筆)’이라고 지칭한 것을 주목해 불 만하다. 등에는 황정경을 메고, 손에는 단지(丹芝)를 가지고 있으며 허리에는 호리병을 차고 있으니 묻지 않아도 청오자임을 알겠다. 몰골사의, 빠른 필치의 구법(句法)이 속세를 활발히 벗어났으니 청오술이 능히 이에 대적할 수 있겠는가. 표암평 199. 삼선도(三仙圖 130.7×57.6) 강세황의 화평과 신선의 도상을 종합해볼 때, 여동빈(呂洞賓)을 가운데 그리고 그 위에 여동빈의 스승인 종리권(鍾離權), 제일 아래에 종리권의 선생인 동화자(東華子)를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여동빈은 당대인(唐代人)으로 호는 순양자(純陽子)ㆍ 회도인(回道人)이며, 진사시(進士試)에 두번 떨어진 뒤 종리권을 만나 신선이 되었는데, 유건(儒巾)을 쓴 칼 찬 장년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종리권은 머리에 쌍상투를 틀고 배를 드러내놓고 있으며 파초선(芭蕉扇)을 들고 있는데 그는 동화자(東華子)에게 선법(仙法)을 배웠다고 한다. 동화자는 동화제군(東華帝君), 동왕공(東王公)으로 여선(女仙)인 서왕모(西王母)와 함께 신선의 영수(領袖)로 칭해진다. 중국에서는 동화제군(東華帝君)ㆍ종리권(鐘離權)ㆍ동빈(呂洞賓)ㆍ왕철(王哲)로 이어지는 전진교(全眞敎)의 도통(道統)설화가 민간에 유포되면서 이들 신선의 인기가 매우 좋았다고 한다. 회회도인(여동빈)은 종리권에게 배우고, 종리권은 호리병을 뒤집어 금단(金丹)을 쏟고 있는 사람에게 배웠다. 때마침 맑은 달이 곁에 있다가 그 사정을 아는구나. 표암평 200. 삼성도(三星圖 130.7×57.5) 복성ㆍ녹성ㆍ수성과 세 명의 동자가 수성이 받쳐든 복숭아를 쳐다보고 있다. 필획이 아직 딱딱하여 김홍도의 후대 인물화가 보여주는 유려하고 여유있는 운치는 없으나, 전통적인 화법을 주로 하며 화원으로서 활동한 김홍도의 전기(前期)화풍을 잘 보여준다. 복을 관장하는 복성은 온화한 얼굴이 넉넉하고 아름다우며, 관록(官祿)을 관장하는 녹성은 높은 관에 화려한 옷을 입었으며, 수명을 관장하는 수성은 늙은 모습에 머리 골격이 길다. 이것은 이서애의 시이다. 이에 대해서 고쳐 평할 필요가 없다. 표암평 201. 자염도사(紫髥道士 130.7×57.6) 강세황은 이 신선의 이름을 자염도사(紫髥道士)라 하였다. 앉아있는 신선의 수염이 붉은 빛을 띤 고동색으로 칠해져있기 때문에 이에 착안하여 자염도사(紫髥道士)라 명명한 것인지, 자염도사의 도상이 원래 있는 것인지는 불명확하다. 다만 도상적 근거를 밝히고 있는 다른 폭들에 비하여 도상에 대하여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붉은 수염의 도사가 총채를 들고 노장(老莊)의 도(道)를 이야기한다. 화개(華蓋)를 높이 든 여자 도사는 가만히 들으며 묵묵히 이해하는가? 세 명의 아이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무소뿔의 하얀 기운이 하늘까지 치솟으니 영험하고 괴이함의 극치이다. 결정코 풍류의 혐의는 없다. 표암평 202. 황초평(黃初平 130.7×57.6) 황초평(黃初平)은 진대인(晉代人)으로 금화산(金華山) 석실(石室) 중에서 은거하다가 도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가 돌을보고 소리를 지르면 모두 양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따라서 그는 막대를 들고 양을 치는 도상으로 등장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갖가지 기물을 넣은 고비를 등에 메고 양을 몰고 가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전 김홍도필의 <파상군선(波上群仙)>(국립박물관 소장)에는 각 신선에 주묵(朱墨)으로 이름이 적혀 있어서, 작품의 연대문제는 차치하고, 신선도상연구에 도움을 주고 있다. 그 병풍에는 안기생(安期生)이라 이름이 적힌, 갖가지 기물을 담은 고비를 등에 멘 선인과 양을 모는 황초평이 동시에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김홍도가 이 신선도를 그릴 당시에는 이미 황초평과 안기생의 도상요소가 섞인 독특한 황초평 도상의 범본이 성립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이 폭에서 황초평은 한쪽 신발을 벗고 있는데 이는 남채화(藍采和)의 도상적 특징이기도 하다. 초평이 돌을 보고 소리를 질렀더니 양이 되었다 하니 조화수를 다한 것이다. 사능이 필묵으로 초평의 조화수를 흘리게 하니 거의 초평보다 한 수 위라고 할 만하다. 표암평 203. 노자(老子 130.7×57.6) 종래에는 강세황이 이 작품의 주제를 노자로 잘못 알고 화평을 썼다고 해석하였다. 노자의 도상적 특징인 청우(靑牛)가 첫 구절에 나오기 때문에 오해가 생긴 것으로 생각된다. 첫 구절과 둘째 구절 사이에는 화평을 쓸 당시의 특수한 상황이 개입되어 내용상 도약이 생긴 것으로 추측된다. 강세황은 수성노인(壽星老人)의 장생계(長生計)가 노자의 도보다 큰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노자를 언급한 것이며, 김홍도가 수성(壽星)과 노자(老子)의 도상을 혼동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노자가 청우(靑牛)를 싫어하여 백록(白鹿)을 불렀겠는가. 도덕경과 큰 복숭아로 장생(長生)의 계책을 삼으니 노자의 도(道)보다 크도다. 표암평 204. 조국구(曺國舅 130.7×57.6) 조국구는 송 조태후(宋 曺太后)의 동생으로서 종리권(鐘離權)과 여동빈(呂洞賓)을 만나 선도(仙道)에 들어가게 된 신선으로 관복차림에 박자를 들고 있는 도상으로 많이 등장한다. 박판을 두드리는 조국구(曺國舅)를 중심으로 피리ㆍ생황을 불고 있는 두명의 선동과 봉숭아를 멘 동자가 비스듬하게 사선을 이루며 서 있다. 이러한 인물배치는 다른 폭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보이는데 이들의 시선은 대개 측면을 향하고 있다. 생황과 피리소리 구름을 두드리고 박판 소리가 귓전에 가득하여 홀연히 그림임을 잊었구나. 화가의 정신이 우주의 밖을 노닐어 보지 않고서는 이러한 경지를 갖출 수 없다. 표암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