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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 콘텐츠

228.죽하맹호도(竹下孟虎圖 91.0×34.0)

  • 작성일2013-09-04
  • 작성자단원미술관
  • 조회수343

대나무를 배경으로 그린 호도(虎圖)는 일본풍(日本風)으로 오해되기도 하지만 죽(竹)을 더불어 그린 것이 조선후기(朝鮮後期) 호도(虎圖)에서 결코 생경한 것이 아니다. 중국에서도 <총죽호도(叢竹虎圖)>란 작품명이나 법상(法常)의 현존작(現存作) 중에서도 찾아 볼 수 있어 연원이 오램을 알 수 있다. 조선 중기(朝鮮中期) 호도(虎圖) 중에서도 죽은 작게 그려졌지만 함께 그려졌음을 살필 수 있다. 다만 소폭호도(小幅虎圖)에서는 드물고 민화류에서 松이 압도적으로 많은데서 초래된 오해로 생각된다. 배경의 한 요소라기 보다는 우선 화면안배(畵面按配)에서도 죽(竹)과 호(虎)가 같은 배경으로 전개된 감상화로서 좋은 실례가 된다. 화면 상단 우측에 세필(細筆)로 황기천(黃基天, 號, 菱山, 1760~1821)이 쓴 발문(跋文)이 있어 작가와 이들의 교류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2행(行) 17자(字)의 제발 끝에 “조선 서호산인화호 수월옹화죽 능산도인평(朝鮮 西湖散人畵虎 水月翁畵竹 ?山道人評)”의 3행(行)을 부기(付記)했고, 이어 ‘황기천인(黃基天印)’ 백문방인(白文方印)이 있다. 그림에 걸맞지 않게 작은 글씨로 내용에 문제점이 없지 않으나 서체비교(書體比較)를 거칠 때 능산(菱山)의 친필(親筆)임은 분명하다. 임희지(林熙之, 1765~1820 이후)는 단원보다 20년이나 연하인데 호에 옹(翁)을 붙여 나타낸 점과 비록 화가자신의 낙관(落款)은 아니나 서호(西湖)는 김홍도가 젊은 시절 쓰던 호(號)란 점등이 미 해결된 문제이다. 이 그림에서도 ‘조선서호산인(朝鮮西湖山人)으로 화가명(畵家名) 앞에 국명(國名)을 적고 있는데, 통신사를 통해 일본에 전래(傳來)된 그림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어 이 그림의 연원에 대해 알려준다. 화면에 상하로 엄격히 양분된 듯한데 이로서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에 비해 호랑이의 비중이 감소된 감도 없지 않으나 유연한 자세의 완벽한 묘사는 녹죽(綠竹)과 적황색(赤黃色) 호(虎)의 당찬 기세는 상호 조화속에 마치 한 사람의 일관된 솜씨인 양 나이를 초월한 단금우(斷金友)만이 가능한 경지라 하겠다. 호도가 화면 하부에 치우쳤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으로서 호랑이의 위치가 결코 약세(弱勢)로 보여지지 않음은 호랑이의 위엄과 그 특징을 잘 살린 핍진(逼眞)한 사실묘사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홍도 그림 중에서도 등의 굴곡은 <송하맹호도>와 같이 심하며 적황색 가채의 선명한 바탕에 황모(黃毛)까지 세필(細筆)로 나타낸 호와 찬란한 줄무늬, 광채를 발하는 눈과 함께 상대방을 압도하는 강한 기운을 잘 담고 있다. 얼굴을 7분명(七分面)으로 나타내 보는 이로 하여금 시선변화 및 거리감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있으며 호랑이 주변에 담청(淡靑)을 넓게 입혀서 호랑이가 화면 밖으로 튀어나오는 듯 여겨지는 효과를 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