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주 메뉴 바로가기

다양한 안산문화재단 문화예술 소식을 접해보세요

더 다양한 소식을 원하신다면

단원 김홍도 콘텐츠

225.모구양자도(母枸養子圖 90.7×39.6)

  • 작성일2013-09-04
  • 작성자단원미술관
  • 조회수452

조건에 있어서 개 그림은 전기화단의 종실출신(宗室出身) 문인화가 이암(李巖, 1499~1545 이후)과 후기화단의 화원 김두량(金斗樑, 1696~1763)이 동화적인 따뜻한 분위기와 실물에 핍진한 사실적인 묘사기법 등으로 시대를 대표하며 큰 명성을 얻고 있다. 개는 문인화가와 직업화가 모두가 즐겨 그린 소재의 하나였으며, 나아가 민화(民畵)에서 벽사(?邪)의 목적에서 문비그림으로도 그려졌다. 김홍도에 있어서는 사냥장면 등 풍속화의 부분에서도 개를 찾아볼 수 있으며, 시대적 요청에 의해 적지않게 그렸을 것으로 짐작된다. <모구양자도>는 어미개와 두 강아지를 나타낸 것으로 분위기는 조선 전기의 이암과 통하되 묘사기법은 철저하게 사생(寫生)을 드러냐 보이고 있다. 어미개의 당당하면서도 모성애가 깃든 표정이, 강아지들의 귀여운 모습과 동작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들이 등장한 배경은 이와 구별되며 들풀과 더불어 소략하게 처리하고 있다. 225.모구양자도(母枸養子圖 90.7×39.6) 조건에 있어서 개 그림은 전기화단의 종실출신(宗室出身) 문인화가 이암(李巖, 1499~1545 이후)과 후기화단의 화원 김두량(金斗樑, 1696~1763)이 동화적인 따뜻한 분위기와 실물에 핍진한 사실적인 묘사기법 등으로 시대를 대표하며 큰 명성을 얻고 있다. 개는 문인화가와 직업화가 모두가 즐겨 그린 소재의 하나였으며, 나아가 민화(民畵)에서 벽사(?邪)의 목적에서 문비그림으로도 그려졌다. 김홍도에 있어서는 사냥장면 등 풍속화의 부분에서도 개를 찾아볼 수 있으며, 시대적 요청에 의해 적지않게 그렸을 것으로 짐작된다. <모구양자도>는 어미개와 두 강아지를 나타낸 것으로 분위기는 조선 전기의 이암과 통하되 묘사기법은 철저하게 사생(寫生)을 드러냐 보이고 있다. 어미개의 당당하면서도 모성애가 깃든 표정이, 강아지들의 귀여운 모습과 동작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들이 등장한 배경은 이와 구별되며 들풀과 더불어 소략하게 처리하고 있다. ▲ top 226.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 90.4×43.8) 좌하에 ‘사능’이라는 김홍도의 묵서가 있고 그 아래 주문방인 ‘김홍도인’과 백문방인 ‘사능’이 있다. 좌상에는 ‘표암화송“이라는 묵서와 백문방인 ’강세황인‘이 있는데 두 관서의 필치는 동일하다. 종래 위 관서로 인하여 호랑이는 김홍도가 그리고 소나무는 그의 스승 강세황이 그린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표옹화송”이라는 관서 가운데“표암”두 자는 다시 쓴 것으로 글씨체가 전혀 다르다. 또 소나무의 형태도 기왕에 알려진 강세황의 그것과는 연결되지 않는다. 필자가 보는 바로는 <송하맹호도>의 소나무 가지는 양식상 이인문(李寅文)의 그것에 가장 가깝다. 그러므로 “표암화송‘은 원래 ‘문욱(이인문의 자)’이었으며 ‘사능’관서와 마찬가지로 김홍도가 썼다고 생각한다. 호랑이는 슬금슬금 걷다가 무언가가 의식된 듯 갑자기 정면을 향해 머리를 돌린 순간을 포착하여 그려졌다. 이러한 자세는 조선시대 <맹호도>에 전형적인 것으로서, 호랑이의 백수지왕(百獸之王)다운 위엄이 정면을 향한 머리와 화폭을 가득 채운 포치에 의해 강조된 것이다. 호랑이는 극 사실에 가까운 묘사로 육중한 괴량감이 느껴지는 동시에 민첩 유연한 그 생태도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다. 특히 잔 붓으로 세밀하게 그려진 터럭과 한호(韓虎)의 특징인 얼룩무늬의 자연스러움은 놀랍다고 할 수밖에 없다. 상면의 소나무는 늙은 둥지 하나를 엇비슷하게 세우고 거기서 다시 어린 가지 하나를 뒤로 돌려 직각으로 뽑아냄으로써 호랑이의 몸통과 꼬리가 이루는 선과, 공간 분배와 구도상의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껍질은 크고 작은 원을 변화 있게 구사하여 질감을 내고 윤곽 쪽으로 옅은 바림을 더하여 입체감을 주었다. 맹호의 위엄을 조금도 상하지 않도록 배려하면서 차양처럼 아늑한 공간을 설정한 이 소나무는 김홍도의 동갑내기 친구인 이인문의 우정을 보여 주는 듯하다. 호랑이 그림은 원래 호축삼재(虎逐三災)라 하듯이 벽사의 뜻이 있어서 정초에 대문에 붙여 귀신을 쫓는 용도로 많이 그려졌다. 그러나 이처럼 훌륭한 비단 그림은 감상용이었을 것이다. 숙종 때 인물 이종미(李種微)는 ,수산집(修山集)>,<화호발(畵虎跋)>에서 말하기를 “그림을 아는 이는 세상에 없는 용그림같은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볼 수 있는 호랑이 그림으로써 그림의 공졸(工拙)을 분별한다”고 썼다. <송하맹호도>야말로 그 예라 하겠다 ▲ top 228.죽하맹호도(竹下孟虎圖 91.0×34.0) 대나무를 배경으로 그린 호도(虎圖)는 일본풍(日本風)으로 오해되기도 하지만 죽(竹)을 더불어 그린 것이 조선후기(朝鮮後期) 호도(虎圖)에서 결코 생경한 것이 아니다. 중국에서도 <총죽호도(叢竹虎圖)>란 작품명이나 법상(法常)의 현존작(現存作) 중에서도 찾아 볼 수 있어 연원이 오램을 알 수 있다. 조선 중기(朝鮮中期) 호도(虎圖) 중에서도 죽은 작게 그려졌지만 함께 그려졌음을 살필 수 있다. 다만 소폭호도(小幅虎圖)에서는 드물고 민화류에서 松이 압도적으로 많은데서 초래된 오해로 생각된다. 배경의 한 요소라기 보다는 우선 화면안배(畵面按配)에서도 죽(竹)과 호(虎)가 같은 배경으로 전개된 감상화로서 좋은 실례가 된다. 화면 상단 우측에 세필(細筆)로 황기천(黃基天, 號, 菱山, 1760~1821)이 쓴 발문(跋文)이 있어 작가와 이들의 교류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2행(行) 17자(字)의 제발 끝에 “조선 서호산인화호 수월옹화죽 능산도인평(朝鮮 西湖散人畵虎 水月翁畵竹 ?山道人評)”의 3행(行)을 부기(付記)했고, 이어 ‘황기천인(黃基天印)’ 백문방인(白文方印)이 있다. 그림에 걸맞지 않게 작은 글씨로 내용에 문제점이 없지 않으나 서체비교(書體比較)를 거칠 때 능산(菱山)의 친필(親筆)임은 분명하다. 임희지(林熙之, 1765~1820 이후)는 단원보다 20년이나 연하인데 호에 옹(翁)을 붙여 나타낸 점과 비록 화가자신의 낙관(落款)은 아니나 서호(西湖)는 김홍도가 젊은 시절 쓰던 호(號)란 점등이 미 해결된 문제이다. 이 그림에서도 ‘조선서호산인(朝鮮西湖山人)으로 화가명(畵家名) 앞에 국명(國名)을 적고 있는데, 통신사를 통해 일본에 전래(傳來)된 그림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어 이 그림의 연원에 대해 알려준다. 화면에 상하로 엄격히 양분된 듯한데 이로서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에 비해 호랑이의 비중이 감소된 감도 없지 않으나 유연한 자세의 완벽한 묘사는 녹죽(綠竹)과 적황색(赤黃色) 호(虎)의 당찬 기세는 상호 조화속에 마치 한 사람의 일관된 솜씨인 양 나이를 초월한 단금우(斷金友)만이 가능한 경지라 하겠다. 호도가 화면 하부에 치우쳤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으로서 호랑이의 위치가 결코 약세(弱勢)로 보여지지 않음은 호랑이의 위엄과 그 특징을 잘 살린 핍진(逼眞)한 사실묘사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홍도 그림 중에서도 등의 굴곡은 <송하맹호도>와 같이 심하며 적황색 가채의 선명한 바탕에 황모(黃毛)까지 세필(細筆)로 나타낸 호와 찬란한 줄무늬, 광채를 발하는 눈과 함께 상대방을 압도하는 강한 기운을 잘 담고 있다. 얼굴을 7분명(七分面)으로 나타내 보는 이로 하여금 시선변화 및 거리감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있으며 호랑이 주변에 담청(淡靑)을 넓게 입혀서 호랑이가 화면 밖으로 튀어나오는 듯 여겨지는 효과를 꾀하고 있다. ▲ top 229.황묘농접도(黃猫弄蝶圖 30.1×46.1) 고양이 그림은 초상에도 능한 변상벽(卞相壁, 1730~?)이 크게 명성을 얻었으나 이암(李巖,1499~1545 이후)과 정선(鄭敾, 1676~1759)으로부터 김정희(金正喜, 1786~1856)에 이르기까지 문인화가들도 즐겨 그린 동물소재의 하나였다. 고양이와 나비를 함께 그리는 것은 장수를 기원하는 것으로 중국에서 고양이의 묘(描)와 70노인을 상징하는 모(芼)와 나비의 접(蝶)과 80노인의 질(?)이 발음이 같기에 이 소재의 그림을 모질도(??圖)라고도 지칭한다. 고양이의 터럭이나 나비의 얼룩무늬 등 매우 섬세하며 사실적인 표현의 사생기법이 돋보이며, 좌측의 패랭이꽃과 제비꽃 등의 묘사에서는 청(淸) 궁정화가의 기법과도 상통되는 면이 감지된다. 현재는 족자로 되어 있으나 중앙의 접힌 자국 등 화첩에서 산락된 것으로 여겨진다. 화면 좌우에 적당한 비중 등 구정 및 구도에 있어서도 뛰어남을 읽을 수 있다. 나비를 향한 고양이의 시선, 전체적으로 화사하면서도 따사로운 분위기가 잘 나타나 있다. ▲ top 230.협접도(頰蝶圖 29.0×74.0) 오늘날 단원에게 있어 영모(영毛), 화훼(花卉), 초충(草蟲)은 그의 다른 분야의 그림보다 소홀히 취급된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 분야에 있어서도 산수나 풍속 또는 도석인물(道釋人物)에 결코 뒤지지 않는 수작(秀作)들을 남기고 있다. 풍속(風俗)이나 산수(山水)등에 나타난 우마(牛馬)등을 통해서도 기량을 옅볼 수도 있고 간송미술관 소장의 이 분야 명품(名品)들과 특히 18폭 영모병(영毛屛)을 통해서 역량을 살필 수 있다. 둥글고 긴 선면(扇面)을 선면(扇面)잘 이용한 이 그림은 오른쪽 하단에 흰 찔레꽃을, 좌측(左側)으로 조금 기운 중앙에 세 마리의 나비를 나타내 산뜻한 구성을 보인다. 바탕이 회색과 선명한 채색(채핵)이 함께 어울려진 채색(彩色)의 아름다움과 석초(石?)및, 강세황(姜世晃)의 평(評)과 전서제발(篆書題跋)을 화면 여백에 적절한 공간을 정하여 그림의 운치를 높혀준다. 오른쪽 하단에 ‘임인추사능사(壬寅秋士能寫)’의 간기(干紀)와 관지(款識)가 있어 단원이 38세에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처럼 석초(石)와 강세황의 묵서가 함께 있는 그림은 간송미술관 소장의 <장과로(張果老)>가 있다. 나비의 가루가 손에 묻을 듯, 인공이 자연의 조화를 빼앗기 족함이 이에 이름을 보매 경탄하여 한마디 부친다. 표암평 나비가 비스듬하게 날개를 펼치는 모습 정도는 비슷하게 그릴 수 있으되 자연에서 부여받은 빛깔을 이 경지로 나타내니 붓꿑에 신이 붙었다고나 할까. 석초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