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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숙이, 경숙아버지

  • 작성일2016-02-18
  • 작성자관리자
  • 조회수4245
ASAC한이야기

ASAC한 이야기

바람을 사랑한 그물에 대하여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의 배우 주인영

그런 사람들이 있다. 정처 없이 세상을 떠도는‘그물로 잡을 수 없는 바람’ 같은 사람. 방랑의 기쁨만이 그를 움직이는 힘이므로 안주는 그의 무덤일 수밖에 없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그를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사람은 세상에 바람을 가둬둘 그물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물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배우 주인영은 연극‘경숙이, 경숙아버지’에서 주인공 경숙이 역을 맡았다. 바람을 사랑한 그물과 같은 딸 경숙이. 10년 전 초연 이후 경숙이로 무대에 서는 배우 주인영을 만났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그렇지는 않다. 동화 ‘가시고기’나 영화 ‘국제시장’에 나오는, 가족을 위해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이 헌신하는 아버지들 말이다. 천성적으로 철들지 않는 바람의 아들인 이 사내는 아버지가 되었어도 바람이 불면 주저 없이 길을 떠난다.
아부지, 아배요, 어딜 그래 갑니까? 아직도 그래 갈 데가 그리 많이 남았습니까?”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의 마지막 장면에서 길 떠나는 아버지를 애타게 부르며 붙잡던 딸 경숙이를 보면서 불경스럽게도 문득 세상의 진리를 찾아 왕궁을 떠난 석가모니가 떠올랐다. 수행에 걸림돌이 된다 하여 아들의 이름을 라훌라 곧 ‘장애물’이라고 이름 지었던 그이다. 물론, 경숙아배와 석가모니는 같은 급의 인물이 아니다. 속세의 인연을 결연히 끊고 고난의 수행 길에 오른 석가모니와 달리 경숙아배는 인연을 끊기는커녕 제 좋을 땐 훌쩍 떠났다가 아쉬우면 연어처럼 가족들에게 회귀하고 그때마다 상처를 남긴다. 가장이 없는 집에 수용소 동지라며 꺽꺽삼촌을 맡기고 멀쩡한 아내가 있는 집에 새아내를 데리고 들어온다. 하긴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산다!”는 알 수 없는 논리로 자신을 합리화 하며 가족을 버리고 혼자 피난을 떠난 사내이다.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하면서도 절절히 그리워하는 딸, 경숙이 역을 맡은 배우 주인영(38세)이 2006년 초연에 이어 10년이 지난 뒤 변함없이 경숙이로 무대에 선다. 강산도 변한다는 그 세월동안 그는 20대에서 30대로, 미혼에서 기혼의 아기엄마로 변했다. 변하지 않은 것은 앳된 얼굴과 무구한 눈빛이다.

경숙아배의 장구와 신발, 배우 주인영의 자유

경숙아배는 가족보다 자신의 꿈이 먼저인 사내로 장구 하나 둘러메고 처자식을 저버린 채 평생을 밖에서 떠도는 아버지다. 경숙아배는 아버지가 남긴 장구와 신발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그것을 온전히 삶의 나침반으로 삼는다. 경숙아배에게 장구는 예술을, 신발은 자유를 상징하는 듯하다. 네 살배기 아들을 둔 배우 엄마는 아들에게 무엇을 주고 싶을까. 그에겐 아들에게 남기고픈 장구와 신발 같은 것이 있을까.
“아니요, 아무 것도 남기고 싶지 않아요. 그저 자유롭게 살길 바라죠. 자유롭고 행복하게! 너무 많은 생각 없이, 걱정 없이! 결혼을 하고 나니 자유의 영역이 적어졌어요. 신나게 골목길, 뚝방길 누비며 자유롭게 지냈던 제 어린 시절이 참 좋았어요. 그래서 제 아이도 규칙적인 생활을 바탕으로 삼도록 하되 자유롭게 키우고 있어요.”
그의 말은 극중 경숙아배가 “나무는 사람처럼 복잡하지 않다. 저 자라고 싶은 대로 자라도 크면 다 멋있다.”고 한 말과 겹친다. 예술가 엄마는 아버지로서는 낙제점이지만 어떤 의미에선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세상을 떠돈 경숙아배를 이해한다고 한다. 아들에게 남기고 싶은 것은 그저 ‘자유’라는 말은 자유로운 영혼의 지중해인 ‘그리스인 조르바’를 그린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생전에 남긴 묘비명을 떠올린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는... 예술가는 마땅히 자유의 후예들일 터이다.

낯선 나를 만나기 위해 떠나는 여행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는 2006년 초연 당시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해 올해의 예술상, 대산문학상(희곡상), 한국연극평론가협회 선정 올해의 연극 베스트3, 동아연극상 4개부문(작품상, 희곡상, 연기상, 신인연기상) 등을 휩쓸었으며 연극의 인기에 힘입어 2009년에는 KBS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연극계의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하며 올해도 무대로 오르는 작품이다.
배우 주인영은 김영필, 고수희, 황영희 같은 연기파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2006년 초연 때부터 줄곧 주인공 경숙이 역을 맡으며 호평을 받았다. 하여 이 작품으로 히서연극상의 ‘기대되는 연극인상’ 등을 받았다. 특유의 천진한 이미지로 최근에도 일본 연출가 노다 히데키의 문제작 ‘반신’에서 어린아이 역할을 맡기도 했다. 출산 후에는 연극 ‘별무리’의 주인공을 맡아 사랑을 화두로 여성의 폭넓은 감성의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연극계에서 ‘스타의 산실’로 꼽히는 극단 ‘골목길’의 간판 배우로 자리매김한 그이다. 그러나 세상의 박수갈채가 배우에겐 어떤 안정감도 주지 못했다. 배우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끝없이 의심하고 불안해한 것은 연극영화과의 문을 두드릴 때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대학 가기 전까진 연극에 대한 이해가 전무했다고 할 수 있어요. 연극을 본 적도 거의 없어서 학교 학예회에서 본 연극이 전부였죠. 무지한 상태에서 막연한 동경으로 연극영화과에 갔는데 다른 친구들은 아주 깊이 있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좀 더 깊이 있게 미학을 공부하고 싶다거나 하면서 진지하게 연극을 바라보고 꿈을 이야기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열등감을 느꼈어요. 그래서 2학년 마치고 배낭여행을 떠났어요. 일종의 현실도피였어요. 마음속 ‘어서 도망쳐!’라는 소리를 따라 무작정 갔어요.”
모든 것이 낯선 첫 해외여행의 도착지 런던에서부터 고생은 시작되었다. 어영부영하는 사이 밤이 되어 교통편이 모두 끊겨서 노숙을 시작했는데 이후 50여 일의 여행기간동안 노숙은 일상이 되었다. 런던의 거지가 버리고 간 동전을 주워서 음료수를 사서 마시고 어쩌다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묵는 날이면 그곳에 남겨진 음식들을 모아서 가지고 다니며 끼니를 해결하기도 했다. 그렇게 고생스런 여행을 하면서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내안의 나’를 발견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후 연극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그는 도피성 여행을 떠났다. 티베트, 몽골, 라오스, 베트남 등 도시의 편리함에 익숙한 자신을 낯선 곳으로 떠나보냈다.
“여행은 익숙했던 모든 것으로부터 나를 단절시키는 거라고 생각해요. 무지의 힘이 마음의 근육을 키워주기도 하고요.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기도 하죠. 예컨대 우리나라에선 버스를 타고 가면서 소리 내서 독백할 수 없잖아요. 여행지에선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인영아, 그때 너는 그러지 않았니?’하면서 자신과 대화를 나누기도 해요. 알아듣는 이가 없으니 눈치 볼 것 없이. 낯선 곳에서 제 행동을 보면서 스스로를 관찰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중독에 가까운 기쁨이에요.”

행복하기에 무대에 오른다

인생은 선택, 연극배우의 삶을 사는 이유를 묻자 배우 주인영은 아직까지는 그것이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시간이 가면 바뀔지도 모른다며 자유로운 영혼 특유의 바람을 닮은 웃음을 지었다.
“배우는 기다리는 게 일이에요. 연극을 쉬고 있으면 사랑하는 아들이지만 아이를 보고 있으면서도 우울하곤 했어요. 연극을 할 때 행복해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합니다. 아이에게도 그런 제 모습이 좋은 영향을 미쳤으면 해요. 일 하는 엄마를 보고 아이가 엄마는 왜 일하냐고 물을 때 ‘이 일은 내 행복이란다’라고 이야기해주면 아이는 자신의 행복이 뭘까 생각하며 찾는다고 해요. 저도 그런 엄마가 되고 싶어요.”
주인영 씨는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희생을 강요하기 보단 서로의 자유를 존중하는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다고 한다. ‘자유로운 엄마’는 쉬 그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말에서 또렷한 가능성이 느껴지기도 했다.

ASAC한이야기

연극 경숙이 경숙아버지

  • 016.4.21(목)-23(토) 목, 금요일 8PM 토요일 3, 7PM
  • 안산문화예술의전당 달맞이극장
  • R석 3만원 S석 2만원
  • 문의 080-481-4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