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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후기

공연

[공연]영웅 안중근 - 조국은 나에게 무엇인가

  • 작성일2011-02-05
  • 작성자최경호
  • 조회수3208
영웅

일곱 발의 총성이 북두칠성을 만들어 낸 후 2시간 30분 동안의 공연이 끝났다. 내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안중근 역을 훌륭하게 열연한 정성화를 비롯한 60여명의 연극배우에게 박수를 보내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2011년 1월 29일 오후 2시 안산예술의전당 해맞이극장 1,2층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배우들과 하나가 되어 숨을 죽이기도 하고 뜨거운 박수를 보내기도 하였다.

나라를 빼앗기고 국모(國母)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에게 살해당하는 치욕을 당한 조선인들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 건너가 항일무장 투쟁을 계획한다.
대한제국 의용군 참모중장 안중근. 그는 만주 주변에서 일본군을 상대하여 전투를 벌이다가 부하들을 모두 잃고 가까스레 목숨을 건져 러시아 독립투쟁의 대부 (大父) 최재형에게 몸을 의탁한다.

1909년 2월 안중근은 연해주 얀치헤에서 동지 11명과 단지(斷指)를 끊어 "대한독립"혈서를 쓰고 3년 안에 나라의 원수 이토 히로부미와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을 처단하지 못하면 자결하겠다는 동맹을 맺고는 장부들과 자작나무 숲으로 걸어 들어간다.
일본제국주의는 대한제국에 이어 중국까지도 삼킬 야욕을 드러낸다. 1919년 10월 26일 조선총독부 초대통감인 이토 히로부미는 러시아 재무장관 코코프체프와의 회담을 위해 하얼빈을 찾는다.

안중근은 우덕순, 조도선과 함께 이토를 제거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하얼빈역에서 이토를 사살한 그는 "대한제국 만세"를 삼창하고 현장에서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를 당해 요순감옥에 수감된다.
그는 재판장에서 자신을 형사범이 아닌 전쟁범으로 처리해 줄 것을 요구하며 이토를 살해한 15가지 이유를 낱낱이 법정에서 밝히고 세계 여러 나라에게 일본이 대한제국에게 가한 죄를 알리며 "누가 죄인인가"하고 되묻는다.

중국의 국부(國父)손문은 중국인들도 해내지 못한 쾌거를 조선인이 해냈다며 격찬하였고 미국은 대한제국의 애국지사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국내 반응은 비열하였다. 친일파들은 순종황제를 협박하여 이토 가족에게 위로금 10만원을 하사하고 일본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윽박질렀다.

감옥에서 장군을 감시했던 일본군 간수에게서도 존경을 받았던 안중근. 그는 죽음을 앞에 두고서 인간이었기에 두려움을 느끼지만 어려움을 밀고나가고 뒤돌아보지 말라던 어머니 말씀을 의지하여 죽음에 의연하며 서구 열강이 동양을 침략하니 동양은 합심하여 서양의 침략을 막아내고 공존공영하자는 내용의 <동양평화론>을 집필하는데 몰두한다.

안중근은 총살을 원했지만 결국 어머니께서 지어온 수의를 입고 교수형을 받는다.
교수형이 집행되는 순간 그는 부르짖는다.
"하늘이시여, 도와주소서. 우리 뜻 이뤄지도록."
내 뺨에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다.

안중근 장군은 자신이 죽거든 뼈를 하얼빈 공원 옆에 묻어 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으로 반장(返葬)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장군의 유해는 여순감옥 근처의 공동묘지에 묻혔고 해방이후 유해를 찾는 작업은 시도되었으나 장군은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일본이 매장 장소를 정확히 알려주지 않아 찾지 못한 것이다.

소설가 이수광이 쓴 <안중근 불멸의 기억> (추수밭. 2009.6.)이 떠올랐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으로 극에서 펼쳐지지 못한 장면들이 내 뇌리를 스쳤다.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 김아려 와 자녀들의 이야기가 다루지 않은 점이 아쉽다.

안산예술의전당을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조국은 나에게 무엇인가.'
나는 한동안 자리에서 꼼짝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