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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공연]<<신춘음악회>> 정확함과 착함을 초대한 악동의 흥미진진한 열정

  • 작성일2011-03-06
  • 작성자조윤정
  • 조회수3265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내 손에는 두 장의 예매표가 들려있었고, 그래야 옳았다. 그러다 그것이 결국 한 장으로 변질되고... 내내 이것마저 취소시킬지, 말지를 고민하였으나...

에잇~! 청승은 그만 떨자. 음악은 음악~! 사정은 사정이고. 무엇보다 봄이 온다지 않는가!


봄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의 차가운 저녁 바람을 가르며,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고향에 온 기분을 만끽했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나는 안산 문화 예술의 전당을 나의 무대라고 생각한다. 안산으로 이사 오면서 유일하게 행복했던 점이 바로 새로 지어진 예술의 전당이 근처에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껏 안산 예전의 문화적 혜택을 만끽하며 느낀 생각은 이만큼 시민들에게 거리적 접근성과 경제적 접근성을 동시에 제공하는 곳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S석이든 R석이든, "서울"이라던가 "성남"에 비해 저렴한 가격 덕분에 내가 진정 원하는 곳은 어디든 앉을 수 있다. 보는 것과 음향이 가장 조화로운 곳을 찾아 딱 맞추어 앉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나의 고향밖에 없다. 게다가 절대로 그 질이 떨어지거나 하지 않아서 항상 편하게 들어가서 행복하게 나올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늘은 학교가 있는 인천에서 출발하여 접근성은 떨어졌다. 하지만 오늘의 연주는 그 어느 때보다 좋아서, 평소의 2~3배 나 되는 행복을 안고 나올 수 있었다.


악기의 조율 후 오프닝으로 연주된 곳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인 "박쥐" 중 서곡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물살을 탄 듯한 느낌으로 여러 개의 음표들이 하나의 음으로 연결되는 듯한 연주. 하지만 중심 주제에서는 기교에 기교를 더했다. 원래 오페레타 내용 자체가 코믹하긴 하다만, 그 느낌을 충실히 반영한 서곡이라고 할까. 아니면 기휘자의 성향을 처음부터 턱! 하니 보여주곤 앞으로 쭉 이렇게 계속되니 적응하라는 엄포일까.

전체적으로 주제 간에 강약이 커다란 파도의 물결로 다가왔고, 각각의 주제 내에서도 화려함이 넘쳐흘렀다. 청중을 높은 곳으로 올려놓았다 떨어뜨리기를 반복하며, 그걸 즐기고 있는 지휘자에게 무장 해제를 한 느낌. 분명 끌려가고 있으나, 그게 싫지는 않았다. 너무 희극적인 해석이라는 생각도 들었으나, 뭐 어떠랴.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휘어잡은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첫 연주가 봄의 경쾌한 뜀박질이었다면, 두 번째 협주곡은 서정의 바람을 불렀다. 피아노가 제시하는 주제로 시작해 오케스트라와 주고받으며 연결에 연결을 거듭하는 아름다운 연주.

피아노 연주자는 정확함의 미학을 즐겼다. 쓸데없는 강함이나 불필요한 연약함 대신 명로하고 간결한 느낌. 원래 남자 피아노 연주자의 강점은 강약의 차가 크다는 것. 그래서 극적일 때에는 더 극적으로 들리고, 부드러울 때에는 한없이 부드럽다. 오늘의 연주자는 그걸 잘 이용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힘을 주어야 하는 곳은 힘 있게, 약한 곳에서는 약하며, 모든 음을 놓치지 않고 정확하고 동질하게 연주하려는 것이 눈에 보였다. 깔끔함. 좋은 봄이었다.

문제는 피아노 연주만으로도 충분했을 텐데... 연주자의 작은 습관이 자꾸 나를 거슬리게 했다. 바로 강약을 신발로 맞추고 있었다는 것. 강한 극적 음색이 기대되는 부분에 여지없이 같이 들려오는 연주자의 신발이 부딪치는 소리. 지금 생각해보면 청중의 누군가가 같이 발을 맞추는 소리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그나마 조용한 2악장은 좀 참을 만 했다. 무거울 때에 한없이 무거워지는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추어 카덴차에 도달했을 때에는 다음번의 "안산 rising star"도 꼭 보러 오겠다는 강한 확신이 생겼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어떤 노래가 들려오든 유혹될 준비를 마친 내가 앉아있었다. 바로 "카르멘"의 "하바네라"가 다음 연주곡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오페라 작곡가를 묻는다면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베르디" 라고 꼽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한참의 망설임 끝에 결국은 작은 목소리로 "카르멘" 이라고 답하게 될 것이다. 비제의 천제성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아리아의 매혹적인 선율.

지휘자와 함께 들어오는 메조소프라노는 꽤나 아리따워서, 나를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초반부는 약간 뒤뚱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의 노래는 점점 좋아져서, 처음 외쳤던 "사랑" 보다 두 번째 말하는 "사랑"이 더욱 매력 있었고, 처음에는 없었던 카르멘 특유의 유혹적인 기교가 뒤로 가면서 생기기 시작했다.

"신데렐라"의 화려하기 그지없는 아리아인 "더 이상 슬픔은 없으리."를 부를 때에는 완전히 목이 풀려서, 부드러우면서도 장식적, 진취적인 음색이 그대로 나타났다. 그리고 깨달았다. 영락없는 행복한 신부의 모습이구나. 처음 들어올 때에는 매혹적인 집시를 원했으나, 끝나고 나니 서 있는 건 너무나도 감동에 가득 찬 착한 공주님이었다. 어찌되었든 청아하고 깨끗한 메조의 소리는 절색의 오케스트라와 잘 버무려져 음악당 내에 울려 퍼졌다.


다음에 연주된 "코다이"의 "갈란타 무곡"은 달리 표현할 필요가 없다. 단 한마디면 된다. "너무 재.밌.다."

분명 한 곳을 연주하고 있음에도 어느 순간 마치 화려한 이슬람 궁전에 들어갔다가 나와서는 울창한 숲 속을 마구 뛰어다닌 느낌. 열정어린 콘트라베이스의 과감한 연주를 타고 힘이 실린 현악기들의 선율이 놀아나고, 거기에 살짝만 들려도 가슴에 가락이 새겨지는 관악기가 강한 타악기들과 만나서 어우러지는 연주. 정말이지, 재미있다는 말 의외에 달리 표현하기 힘든 하모니를 만들어냈다. 자유로운 듯 하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 주제들의 연속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각자가 즐김으로 해서 모두가 되었을 때 더 아름다운. 이런 쓸모없는 말들을 다시 그때의 연주로 바꾸어 전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텐데.

덕분에 프로그램 상 마지막이었던 "윌리엄 서곡"은 오히려 어떤 의미에선 평범했다. 첼로의 온화한 선율의 나열로 시작해서 강렬한 타악기의 두드림까지. 태풍을 연주함에 있어서 너무 강.강.강.인 감이 없잖아 있었으나, 연이어진 아름다운 아침의 모티브가 나를 진정시켰다. 너무도 평화로워 어쩌면 영원히 다음이 나올 것 같지 않았던 음색. 하지만 클라리넷의 마지막 선율을 되새기며 즐길 새도 주지 않고 그만 트럼펫이 울려버렸다. 시작부터 급했던 전쟁의 테마는 내내 약간 빠른 듯한 느낌을 주며 흘러갔고, 강렬한. 그러기에 인상 깊은 마지막을 향에 달려갔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박수. 조금은 망설이던 지휘자가 다시 연주한 곡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피치카토 폴카 Op.449"였다. 슈트라우스와 지휘자는 너무도 죽이 잘 맞아서, 마치 지위자가 관중을 놀리는 듯한 익살스러움과 개그스러움이 넘쳐흘렀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경쾌함과 흥겨움이 가득한 이 연주곡이 이번 프로그램 중 가장 신춘음악회에 어울리는 곡 같았다.


그 후에도 연주자들을 일으키고 나가자고 고집부리는 지휘자에게 아낌없는 환호를 보낸 결과 다음 앙코르 곡을 들을 수 있었다.

두 번째 곡은 확실치 않으나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친숙한 곡이었다. 심지어 레코딩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이제까지 주구장창 가득히 꽂혀있는 레코드들을 뒤지다가 포기했다. 이럴 때 되면 정말 나 자신이 안타까워 진다. 아무튼 짧지만 무언가 경쾌하고 아름다우면서, 왠지 돌면서 춤을 추어야 될 것 같았던 곡. 후에 이곡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게 될 거라 믿는다. 그것이 지나가면서 다시 그 주제를 듣게 될 때든... 인터넷을 통해서든...


마지막까지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던 연주자들은 억지로 끌고 내려온 건 지휘자였다. 재미와 위트 넘치는 지휘자와 연주하는 것이 너무 즐겁다는 것이 느껴져서, 그리고 이 시간이 끝나는 걸 어쩌면 청중들보다도 더 아쉬워하는 연주자들의 마음이 와 닿았기에, 마지막으로 내가 보내는 박수는 그 자체가 희열이자, 환호이자, 나의 봄을 열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오늘의 지휘자와 피아니스트와 성악가와 연주자들이 묻는다.

"여인이여, 그대 오늘 무엇을 들었는가."

네. 저는 오늘 봄과 봄, 그리고 봄을 보았습니다.
제 겨울을 앗아가 버린, 떠오르는 명료함과 열정어린 위트와 능숙한 깨끗함을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어지러이 흐트러져 방치해 둔 것을 곱게 접어 드립니다.
가슴에 아려있던 우울함의 추위와 메마름의 털옷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