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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공연]<관람후기> 춘천거기

  • 작성일2012-05-30
  • 작성자노정은
  • 조회수3994
재미난 거 없나 둘러보던 내게 눈에 띈 건 이름도 소박하다면 소박한 바로 "춘천 거기"였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그냥 이끌림에 선택했던 이 연극..
예매한지 한참 돼 예매한지도 잊어버리다가 늦은 봄이자 다가오는 싱긋한 여름 사이에 이 연극은 그렇게 내게 찾아왔다.

춘천 거기, 이 연극은 아홉명의 인물이 등장하여 각각의 자신들의 사랑을 보여줬다. 그러나 그 사랑은 9개 빛이 모여 모두 하나의 큰 사랑과 같은 느낌이었다.

유부남 명수와 선영, 연극을 보러 같이 동행한 친구는 절대 그들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보편적으로 이들의 사랑을 곱게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을 통해서 내가 느꼈던 사랑의 감정은 안타까움과 애절함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함에 있어서 애절한 상황은 여러가지로 나타날 수 있지만 그 중 가장 극복하기 힘은 상황은 바로 이 둘의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당당히 남들 앞에 내놓을 수 없는 것, 이렇게 사랑스럽고 고마운 사람을 늘 숨겨야만 하는 마음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슬프고 괴롭게 하는 것 같다. 나와 쏙 맞는 소울메이트가 단 한명이라는 법은 없는 것 같다. 다만 그 사람을 조금 늦게 알아본 죄 아닌 죄로 함께하는 시간동안 서로를 감춰야만 하는 운명속에 가둬놔야 한다는 건 정말 잔혹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사랑은 애절함, 그 자체인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혼자 짝사랑하는 지환. 그의 감정은 일방통행이기 때문에 그의 사랑은 그림자다. 알면서도 모르는척, 내가 바라보는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게 아닌 줄 알면서도 그래도 다시 한 번 기대해보는 것. 짝사랑이 두렵다고 느껴지는 건 대게 이 감정의 끝이 내가 원하는 결과가 아님을 알면서도 애써 부정하고 자꾸 한번 더, 조금 더 하면서 그런 초라한 나와 마주하게 될 때로부터 자꾸 도망가려고 하기 때문인 것 같다. 결국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행복하도록 내가 떠나 주는 것. 그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게 아프고 안타깝지만 훗날 되돌아봤을 때 그 역시도 하나의 사랑이었음을 알고 느껴지는 아련함. 그건 짝사랑을 하는 사람만이 아는 사랑의 특권일 것이다.

반면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응덕과 주미. 그들의 사랑은 온통 설레임이다. 둘은 사랑에 빠진 남자와 여자가 하는 행동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특히 같은 여자로서 주미가 소개팅 후 마음에 안든다며 징징거렸지만, 결국 응덕의 순수하고 진실한 모습에 넘어가는 과정이 너무 재밌으면서도 상큼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예쁜 모습만 보이고 싶고, 그 사람의 술수에 모르는척 넘어가주는 여우짓까지. 이 두 사람을 보면 정말 처음 해보는 연애시절이 생각나서 나 또한 두근거렸다. 서로를 위하고 예쁘게 지내는 모습이 너무 좋아보였다.

하지만 영민과 세진의 사랑은 미성숙했다. 서로 너무나 사랑하지만 가슴에 하나의 상처를 심고 자신들도 모르는 새에 그 상처를 계속 키우는 어린 사랑이었다. 너무 좋아서 모든걸 알고싶어하지만 그 앎의 대가는 때로는 잔혹하기도 하다. 사랑을 하면서 우리는 그 사람의 모든 걸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현실로 나타날 때 우리는 그것이 큰 착각이었음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슬픔을 나누면 분명 반이 된다고 하거늘, 사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더 엄격해지는 나를 보면서 결국 나 스스로도 비참해지고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에 절규하기도 한다. 때로는 그 사람의 비밀을 지켜주기도 하고, 행복하지 않은 과거까지도 머리가 아니라 진정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을 때, 이들의 사랑은 좀 더 위대해지고 견고해 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수진과 병태의 사랑을 보면, 이건 내가 나이를 한살 한살 먹어가면서 가장 자주 느끼는 사실인데 바로 사랑은 시나브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한창 어릴 적엔 사랑은 운명처럼 짜잔 하고 나타나는 줄만 알았다. 한눈에 "헉!" 외마디 비명이 나올 상황에서 내 왕자님이 나타날 줄 알았다. 그렇지만 시간을 되돌려보면, 사랑은 내가 이미 알아차릴 때 쯤 내 옷을 다 적셔버린 가랑비같았다. 늘 보이던 사람이 안보이고, 매번 오던 안부연락이 없을 때, 그 허전함. 정말 자칫하다가는 온 줄도 모르고 그냥 보내버릴뻔 한 사랑. 그래서 병태와 수진이의 사랑은 강렬한 인상을 주진 않았지만 마지막까지 긴 여운을 남겨주었다.

이처럼 사람들은 다양한 사랑을 하고 있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나였고, 내 친구이자 내 애인이고 가족이며 동료였다. 세상에 사랑만큼 천의 얼굴을 가진 게 또 있을까? 사람의 개성만큼이나 사랑도 참 다양한 것 같다. 각각의 커플들이 보여준 사랑은 다른게 아니라 바로 우리가 하는 그런 사랑이었다.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우리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더 많이 공감하고 그들의 아픔에 함께 아파하고, 그들의 시작을 함께 축복할 수 있었으며 그들의 감정에 더 잘 이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 얘기하고 싶은 부분은 수진이의 나래이터였다. 짧지만 그녀의 나래이터는 한소절 한소절이 마음에 너무 와닿았다. 가장 인상깊은 구절은 돌아서는 사람의 마음과 남겨진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읽을 때에 관한 구절로,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정말 이 구절이 오랜시간동안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사랑이 시작하고 끝나는 그곳 춘천. 연극을 다 보고나서는 정말 나 또한 춘천에서 새로운 사랑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당장 떠나고 싶었다. 특히 이 연극은 사랑의 여러가지 모습을 다양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누구라도 적어도 한 인물에 대해서는 공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봄이 물러간 아쉬운 요즘, 특히 마음이 왜인지 모르게 들떠있다면 꼭 이 연극을 한번 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