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숲 개인전 <귓속말: 사실은 처음이야>
2025-04-19(토) ~ 2025-05-02(금)전시 소개
작가는 첫 임신 기간을 마주하며 (도무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몸과 정신의 수많은 변화를 관찰하고, 이를 즐겁게 기록하고자 한다. 한 개인의 삶에 예고 없이 찾아온 존재와의 낯선 공존은 수많은 실패를 반복하며 목적 잃은 연습으로 채워진다. 울렁이는 속과 축축 늘어지는 몸을 일으켜 세워가며 어색하지만 함께하는, 어렵지만 적응하는, 두렵지만 받아들이는 연습을 수십 번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쉴 틈 없이 울렁거리던 입덧도 가시는 것만 같다.
세상에서 뚝 떨어져 나온 것만 같은 시간에 놓여 가장 가깝고, 작은 타인에게 속삭인다. ‘너 때문에 못하게 됐고, 너 때문에 하게 됐다’라고. 속삭이듯 중얼거리기를 반복하고 다시 작업을 시작한다. ‘내일은 또 어떻게 버티지?’ 도통 기다려지지 않는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한다.
그간 써 왔던 물감의 냄새를 도무지 맡지 못해서, 다른 재료를 탐색했다. 나를 아니 너를 해치지 않을 재료를 찾고, 자세를 잡고, 또 연습을 시작한다. 그날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작업의 소재와 재료를 결정해야 하는 제약도 생겼다. 이리 앉아도 불편하고, 저리 누워도 마땅치 않은.
<귓속말: 사실은 처음이야>는 ‘임신’이라는 새로운 여정을 떠나게 되면서 겪는 생소한 지점을 포착하고, 수집하고, 그리고, 쓴다. 일련의 행위와 더불어 변화되어가는 몸과 의식의 흐름을 추적해 기록한다. 처음 겪는 혼란을 흘려보내지 않고 이미지와 글, 작업물로 남기며 작가는 이제는 고백해야 할 시간이 왔음을 알린다. ‘사실은 이 모든 게 처음이라 두렵고, 힘들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버텨낸다고.’
반복하는 행위로서만 존재하는 작업 방식은 작가에겐 늘어난 시간을 다잡는 수행이자 낯선 일상을 버티는 수련이다. 연습의 조각이 집합하여 비로소 완성의 의미를 잃고 방황할 때 비로소 그 이름이, 이룸이 작가를 토닥이는 것만 같다.
이 지극히 사적인 관찰 아카이빙은 또 다른 기이하고도 울렁거리는 미지의 세계에 초대된 수많은 여자들을 만나기 위해 기꺼이 차려진 공유의 장이며, 이미 겪었을 또는 겪을 다른 이에게 건네는 공감과 안부 인사이기도 하다.
작가 노트
어느 날 무심히 스쳐 보냈던 타인의 경험이 내 몸을 관통했고, 며칠이 지나 그것은 아주 추상적이고, 신비한 형태로 내 자궁 어딘가에 눌러앉았다. 지금껏 만나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 미지의 타인을 마주한 나의 일상은 알 수 없는 이물감에 전복되고야 말았다. 앞으로 이 가깝고도 낯선 존재와 느닷없이 내 몸을 나눠 써야 하다니? 그것도 열 달씩이나.
묵직한 미지의 존재가 들어섬으로써 비로소 묵직이 내려앉고자 한다.
나를 앉히고, 묶어 고립시키는.
동시에 말하게 하는 그런 존재가 생기니 비로소 처음이라고 말해본다.
이제는 고백해야 할 시간이 왔다고 속삭여본다.
미처 마치지 못한 방랑에게 다시 돌아갈 채비를 하러 떠난다고 둘러대고
급히 완수해야 할 임무를 마치러 간다.
미완으로서 머무는 공간
그곳에 도착했음을 알았다.
흐릿한 이야기와 감정의 얽힘이 검고, 하얀. 그리고 빨간 흔적으로 남겨져 있다.
나오라고 소리친다.
눈이 열 개 달린, 쓰지 못하는 팔다리를 가지고 굴러다니는 흙덩어리
낮게 속삭인다.
너는 무엇이 궁금하니.
그렇게 계속 연습만 하던 나는
무엇이 너를 망설이게 했을까.
마침내 티 없이 얕게 솟아 있는 실뭉치의 끝을 당겨보려 한다.
작가 소개
지난해 말까지 시각예술 분야에서 창작, 기획자로 발에 땀 나게 뛰어다녔다. 올해가 시작되기 며칠 전 뱃속에 다른
존재가 생겼고, 현재 심한 입덧과 컨디션 난조로 주로 집에 머물며 할 수 있는 창작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맞이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변화된 일상에 적응해 나가며 창작자로서 이제껏 해보지 않은 시도를 해볼 동기를 얻었다.
학부에서 판화를 전공했고(추계예술대학교), 석사과정에서 Visual Communication(KMUTT, Bangkok)을 공부했다.